매물 탐색 중 매도·매수는 신중
변동성 대비 채권·달러·금 안전자산 선호
증시 출렁이면 주식 분할매수 돌입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66/0000878694?sid=101
금리와 경기 향방이 안갯속에 빠지면서 고액 자산가들은 투자를 서두르기보다 시장을 예의주시하며 관망하고 있다.
요즘 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트렌드를 요약하면 예적금보다는 채권, 주식, 펀드, 금, 부동산 쪽으로 눈을 돌렸다.
단, 매수·매도 등 투자 결정에는 신중한 편이다.
부동산의 경우 보유 현금이 상당한 자산가들도 선뜻 매수하기보다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의견이 많았고, 주식은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분할 매수하면서 평균매입단가를 낮추고 있다는 게 금융업계 자산관리 전문가들의 얘기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고액 자산가들의 채권, 달러, 금 등 안전자산 선호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19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PB센터 관계자들에 따르면 자산 관리를 맡긴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최근 투자를 서두르지 않고 시장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은 고액자산가들을 대상으로 뱅킹, 투자, 법률·세무 컨설팅 등 종합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업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대체로 3억~5억원 이상 예치한 이들이 대상인데, 최근에는 고액 자산가 기준을 3억원 이상, 5억원 이상, 10억원 이상, 30억원 이상, 100억원 이상 등으로 세분화해 PB센터를 별도로 운영하거나, 맞춤형 특화서비스를 제공하는 추세다.
자산가들이 부동산 관망하는 이유
자산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처인 상가 등 부동산 시장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6일 집계 기준 서울시의 1월 상업·업무용 부동산 거래건수(계약일 기준)는 398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과 2월 서울 내 상업·업무용 부동산 거래건수가 각각 991건, 1001건인 것을 고려하면 거래량이 급감했다. 구별로는 강서구(40건), 은평구(56건), 중구(36건), 용산구(27건) 구로구(22건), 강남구(20건) 등의 순이다.
금리와 가격, 세금과 규제 등의 변수가 자산가들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김현섭 KB국민은행 KB GOLD&WISE 한남PB센터장은 “부동산의 경우 아직은 조정기라고 판단하고 매수·매도에 나서기보다는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금리 인상으로 치솟던 부동산 가격이 하락 조정기에 진입하면서, 자산가들이 보유 중인 부동산 가치도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보유 부동산을 낮은 가격에 매도 처분하기보다 시장의 변화, 즉 상승장을 기다리며 보유하겠다는 자산가들이 많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이와 동시에 현재까지는 대출 지렛대(레버리지)를 활용해 추가로 부동산을 늘리는 데도 소극적인 상황이다.
자산가들이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물가가 쉽사리 잡히지 않아 금리 인상 기조 변화를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
경기침체 우려로 신규 투자한 부동산의 가격 상승, 즉 수익률이 예전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세금 부담 영향도 크다.
지난해 KB금융그룹이 발표된 ‘KB부동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PB 고객들이 선호하는 부동산 투자자산은 상가(38%)가 1위였다.
그동안 자산가들은 재건축·일반아파트를 가장 선호했는데,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데다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커지자, 부동산 선호도에 변화가 생겼다는 게 KB부동산의 분석이다.
이미 주택과 상가 등을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들의 특성상 시세보다 가격을 대폭 낮춘 급매물도 미래 가치를 우선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거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이창동 밸류맵 연구소장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 부동산 시장 거래가 얼어붙었고, 매수세가 살아날 조짐이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최근 거래된 서울 상가 건물을 보면 평당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면서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상가, 상업시설의 가격 조정 움직임이 주택 시장의 하락세보다 더디기 때문에 자산가들 입장에서는 좀 더 지켜보겠다는 심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물론 지난해 주택 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한 만큼, 똘똘한 매물을 탐색하며 ‘기회’를 노리는 부자들도 있다.
금융자산 10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의 자산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A은행 자산관리 관계자는 “초고액 자산가들도 시장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가 우세하긴 한데, 지난해와 올해 연초를 비교하면 매물을 검토하는 등 부동산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초고액 자산가들은 부동산을 개인이 아닌 기업(법인), 임대사업자 등의 형태로 거래, 운영하는데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 회사 규모를 키워 2~3년 전 보유한 부동산을 매각해 큰 자금을 수취한 고객도 아직 매수보다는 시장을 좀 더 살피겠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시장의 규제 완화로 투자 심리가 살아날지 주목된다. 정부는 오는 3월 말부터 다주택자도 부동산 규제지역인 서울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와 용산 지역 내 주택 매입 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30%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주택 임대·매매사업자도 규제지역은 LTV 30%, 비규제지역은 60%까지 푼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업·업무용 빌딩과 상가·사무실을 합한 전국 상업·업무용 부동산 거래량은 7만120건으로 전년(9만8568건)보다 28.9% 감소했다.
이 중 상업·업무용 빌딩 거래량은 1만8408건으로 2012년(1만8049건) 이래 10년 만에 최저치다.
예금 금리 하락에 주식과 채권, 펀드 분할 매수
금융사 PB센터를 통해 거래하는 자산가들은 이미 예·적금, 주식, 채권, 펀드, 달러, 부동산 등 여러 곳에 자산을 분산해 관리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와 미국 증시가 변동성이 큰 혼조세를 보이고 있는데, 자산가들도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분할 매수하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은행 예적금 금리가 오르자 예적금 상품에 돈을 넣어 이자를 챙겼던 자산가들도 채권, 주식, 펀드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고 5%를 넘었던 시중은행 금리는 3%대 초중반대로 하락했다.
목돈을 쥔 현금 부자도 이자 매력이 떨어져 새 투자처를 찾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금리 인상 정책을 펼치면서 채권이 주요 투자처로 부각됐는데, 고액 자산가들은 다소 일찍 채권 시장에 발을 들였다.
채권에 직접 투자하는 경우 매매 차익에 대해선 과세하지 않아, 정기예금보다 수익률이 높으면서도 세금을 낮출 수 있다.
자산가들은 금리를 올리는 시기에는 채권 가격의 역방향으로 투자하는 ‘인버스 상품’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노렸다.
이후 지난해 10월 국고채 금리가 고점을 찍고 내리자, 보유하고 있던 국채를 매도해 매매 차익을 거둔 뒤 은행채, 회사채, 해외 채권 등에 투자했다.
금리가 더 높은 채권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이달 16일까지 3개월간 개인 투자자가 장외채권시장에서 채권 4조817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전년 동기 개인투자자가 순매수한 채권 규모가 6866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개인의 채권 매수가 급증했다.
채권은 금리가 오르면 가격이 내리고, 금리가 내리면 가격이 오른다.
금리 급등으로 싼값에 채권을 사들였다 금리 하락 후에 매매차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증권 시장이 변동성이 큰 장세이다 보니 자산관리 전문가들은 분할 매수와 분산 투자 전략을 권하는데, 돈을 맡긴 자산가들도 이에 대체로 동의하며 투자를 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과 우리나라 증시가 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투자 손실권에 있는 자산가들도 있다”면서 “이들도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분할 매수하면서 소위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섭 KB한남PB센터장은 “예적금 금리 매력이 떨어지면서 배당이익도 누릴 수 있는 채권, 주식, 주가연계증권(ELS), 공모·사모펀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면서 “다만 최근 변동성이 크고 방향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시간을 두고 분할 매수, 분산 투자하는 전략을 권하는데 고객대부분이 이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재철 하나은행 신탁사업본부장은 “시장에 불안 요소가 많다 보니 변동성을 줄이면서도 예적금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면서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 등 채권, 주가연계증권(ELS), 주가연계신탁(ELT) 등이 꼽힌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과 달러도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수단으로서 자산가들이 장기 보유하는 자산이다”라고 덧붙였다.
허지윤 기자 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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