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급 임금, 복지, 작업환경에 지원 자격은 고교 졸업장 뿐
역대급 경쟁률 속 변별력 한계…
'운'이 좌우하는 '로또 일자리'
임금 양극화 줄여야 하는데…상대적 박탈감 심화 우려
현대자동차의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 생산라인 모습. ⓒ현대자동차
[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 접수 개시 몇 시간 만에 채용 홈페이지가 먹통이 됐다.
세 자릿수 모집에 수만 명, 심지어 10만명 이상이 한꺼번에 몰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대졸 사무직 사원이나 7급 공무원들까지 지원했다거나 지원 의사가 있다는 글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그야말로 ‘로또급 열풍’이다.
지난 2일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현대자동차 생산직 신입사원 모집 얘기다.
10년 만에 열린 현대차 생산직 채용문에
’ 운운하며 취업준비생은 물론, 나름 안정적 직장을 가진 이들까지 대거 몰려든 것이다.
사실 특정 기업의 특정 일자리에 ‘로또’라느니 ‘꿀보직’이라는 수식어가 달리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아무 노력 없이 오로지 ‘요행’으로 얻어냈다는 뉘앙스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대차 생산직이 로또나 꿀보직이 아니라는 반박 근거를 찾기도 마땅치 않다.
현대차 생산직은 평균 1억원에 육박하는 고연봉에 국내 최상급 복지혜택을 자랑하며, 강력한 노동조합의 존재로 정년까지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아무 걱정이 없다.
심지어 사회적 합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정년 연장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이기도 하다.
생산직 중에서는 노동 강도가 높지 않은 편에 속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중대재해에 노출될 위험 요소도 사실상 없다. 자동차 공장에서 프레스, 용접 등 힘들고 위험한 작업은 모두 자동화돼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차체에 모듈화된 부품을 볼트로 조립하는 수준이다.
조선소나 건설 현장 등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나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다.
컨베이어 벨트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작업 속도를 맞춰갈 수 있을 만큼 숙련도를 쌓으면 정년까지 아무 고민 없이 일할 수 있다.
사무직이나 공무원들까지 이 자리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터.
이런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국민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고등학교 졸업장’ 뿐이다.
명문대 졸업장도, 토익 점수도, 고스펙 자격증도 필요 없다.
물론, 한정된 자리에 수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만큼 면접과 인적성검사에서 옥석을 가리겠지만, 과도한 스펙이 불필요한 자리인지라 변별력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고충일 것이다.
합격 여부와 준비 과정에서의 ‘치열한 노력’의 상관관계는 사실상 없다시피 한 셈이다.
이처럼 현대차 생산직은 ‘대체 불가한 자격과 실력’을 요하지 않으면서도 처우와 근로환경은 최상급인, 요즘과 같은 경쟁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자리다.
1000원짜리 지폐 한 장만 있으면 누구든 거액의 당첨금에 도전할 수 있지만, 결과는 노력과 실력이 아닌 ‘요행’에 의해 판가름 나는 ‘로또’에 비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들보다 노력과 실력이 부족해 좋은 일자리 쟁탈전에서 밀렸다면 누구든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취업을 위해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이가 순전히 ‘운’ 때문에 현대차 공장보다 형편없이 처우가 박하고 근무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심각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직무·성과급제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임금 양극화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국정과제다.
업무 특성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별화하고, 끝없이 치솟는 대기업 임금과 열악한 중소기업 임금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데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충분하다.
현대차의 ‘킹산직’ 채용 해프닝은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돌발 변수다.
더구나, 전기차 전환에 따른 인력 수요 감소로 가뜩이나 생산직 인력을 줄여야 할 판에 추가 채용을 요구하는 노조의 압박에 못 이겨 불가피하게 이뤄진 일이다.
과거 처우와 근로환경이 열악한 시절부터 일하며 회사 성장에 일조한 장기근속자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입사부터 성과와 무관하게 고임금을 보장받는 일자리를 ‘운’으로 얻게 된 신입사원들의 존재가 앞으로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의 시선이 많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