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의 예고된 미래…
주유소가 사라진다
지역 대표하던 주유소 속속 문 닫고 오피스텔로…
“2040년엔 3000개만 남을 것”
[비즈니스 포커스]
이마트24가 입점해 있는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사진= 연합뉴스
3월 20일 찾은 서울 삼성중앙역 사거리 한 공터에는 현재 건물을 올리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과거 이곳은 삼성동을 대표하는 주유소였다.
‘오천주유소’라는 이름으로 SK네트웍스가 직영해 왔다.
택시 운전사들 사이에서는 일대 사거리를 ‘오천주유소 사거리’로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
하지만 결국 2019년 폐업을 결정하고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다.
주유소 부지는 현재 제약회사인 유니온약품이 2000억원 정도에 인수해 대형 오피스텔을 짓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트럼프월드 2차 아파트 인근에 자리한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도 지난해 문을 닫았다.
이곳 역시 여의도를 대표하는 주유소 중 하나였다.
지금은 가림막을 친 채 29층 규모의 오피스텔을 건설 중이다.
한때 잘나갔던 두 주유소의 폐업은 주유소의 앞날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도로 위를 질주하는 전기차들이 많이 보이면 보일수록 관심이 쏠리는 것은 주유소의 미래다.
내연기관차를 타깃으로 운영되는 주유소들이 과연 전기차 시대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운영될까 궁금해진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늘어나는 전기차와 비례해 문을 닫는 주유소가 급증할 것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도심 속에서 주유소를 찾는 일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전기차의 급증으로 휘발유나 경유를 찾는 수요가 크게 감소하는 것이 배경이다.
도로변 목 좋은 장소에 자리한 많은 주유소들이 결국 폐업하고 그 자리를 오피스텔이나 상가 등이 대신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전기차와 주유소는 공생 어려워
‘8000개.’
국책 연구 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40년까지 사라질 주유소 수를 이같이 예측했다.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미래에는 현재의 4분의 1 수준인 3000개의 주유소만 남게 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기차 보급의 확산으로 주유소의 미래가 어둡다”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이 예상보다 더 이른 시기에 급격하게 주유소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기차 수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만 보더라도 이런 추세를 엿볼 수 있다.
시장 조사 연구 기관인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가 국토교통부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전년 동기 대비 63.8% 증가한 16만4482대로 집계됐다.
전체 판매(168만5028대)의 9.8%를 차지한다. 10명 중 한 명이 신차로 전기차를 구매한 셈이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 비율 역시 10% 수준까지 올라왔다.
세계 각국도 당장 직면해 있는 환경 문제를 고려해 잇따라 내연기관차와의 작별을 고하고 있다.
서울시 역시 2035년부터 더 이상 내연기관차의 신규 등록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이미 내놓았다.
완성차업계에는 회사별로 시기 차이는 있지만 전기차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계획 만큼은 모두 일치한다.
아우디폭스바겐은 2040년 내연기관차 생산을 아예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주유소 그리고 이를 운영하는 정유사는 늘어나는 전기차가 마냥 반가운 존재만은 아니다.
그 수에 비례해 주유소 사업을 바라보는 우려 또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기차 수가 늘면 늘수록 주유소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주유소를 전기차 충전소로 바꾸면 되지 않아’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한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와 주유소는 결코 공생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이다.
내연기관차는 운전자가 들어와 휘발유나 경유를 가득 채우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도 5분이 되지 않는다.
즉, 회전 속도가 빠르다.
전기차는 다르다. 한 번 충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보통 급속 충전이 최소 30분, 완속 충전은 10시간 넘게 걸린다.
한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주유소가 전기차 충전소로 완전히 전환하게 되면 하루에 올릴 수 있는 매출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를 뻔히 아는데 누가 주유소를 전기차 충전소로 전환하겠느냐”고 했다.
만약 충전소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과연 안정된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다.
왜냐하면 전기차는 충전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는 주유를 하기 위해 반드시 주유소에 들러야 하지만 전기차는 아파트나 주택에 설치된 충전소, 대형마트, 빌딩 주차장 등 어느 곳에서도 쉽게 충전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편의점에서도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지역을 대표하는 일종의 랜드마크와도 같았던 주유소들이 최근 하나둘 문을 닫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유소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가맹점주들 사이에서도 이전과 달리 수익성이 떨어진 주유소 대신 수익성이 높은 오피스텔이나 상가 건물을 지으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확한 수치는 집계되지 않고 그의 말처럼 문을 닫은 주유소 부지에 새로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최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주유소가 사라질 수는 없다.
여전히 전기차 시대에도 내연기관차는 도로 위를 달릴 것이고 이들이 있는 한 주유소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다만 지금처럼 오로지 자동차에 주유나 혹은 배터리 충전만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주유소는 더 이상 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주유소들은 내부에 편의점이나 베이커리를 도입한다거나 혹은 이커머스 기업들의 물류 거점을 자처하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움직임 또한 전기차 시대에서 어떤 방법으로 주유소들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일종의 실험을 하는 것”이라며 “전기차 시대에서 주유소는 주유나 충전 외에도 다양한 목적으로 운전자들 또는 소비자들이 유인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돋보기
불투명한 주유소 미래에 정유업계도 ‘비상’
전기차 시대를 맞아 정유사들 역시 ‘탈정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주유소 사업을 통해 낼 수 있는 수익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연료 에너지원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는 같지만 본질적으로 휘발유의 유통 구조와 전기의 유통 구조는 사업 모델 자체가 완벽하게 다르다.
휘발유는 정유사가 원유를 정한 뒤 일련의 유통 과정을 거쳐 주유소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반면 전기는 정유사가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한국전력에서 전기를 생산해 직접 공급한다.
정유사가 일절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정유사들이 느끼는 위기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주요 정유사들이 미래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SK이노베이션이다.
직영 주유소를 모두 매각하며 주유소 사업을 포기했다.
그리고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과 동시에 급증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배터리 사업에 7조원을 투입할 방침을 밝히며 생산 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수소 부문 투자에 집중하며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의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5년까지 블루 수소 연산 10만 톤 생산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 밖에 친환경 화학·소재와 같은 신사업 비율을 70%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GS칼텍스 역시 미래 사업 강화에 나섰다.
GS칼텍스는 지난해 11월 창사 이후 최대 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전남 여수에 올레핀 생산 시설(MFC)을 준공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또 경상남도 진주시, 한국남동발전과 업무협약을 맺고 청정 수소 생산·공급·활용 및 기타 탄소 중립 사업 협력에 나설 계획을 밝힌 상태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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